서문
올해 3월에 작은 교통사고가 있었습니다.
얼마냐 작냐면....
소소하게 자전거에 치였습니다.
그래서 소소한 이야기 카테고리입니다.
라이딩용 자전거도 아니고 흔히 마마챠리ママチャリ라고 불리는 작은 바구니가 달린 타운바이크였습니다.
전 파란신호에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고... 맹스피드로 달려오는 저 마마챠리에 치여서 나뒹굴었습니다.
당연하지만 도로교통법상 이륜차가, 청신호인 횡단보도에서 보행자를 친 사고였기에 과실비율은 상대방 100 : 0 또죤 이었구요.
십수년 살면서 "저러다 사람 한번 쳐 봐야 정신을 차리지" 하고 생각하고 다닐 만큼, 제가 경험한 일본의 자전거 매너는 상당한 정비가 필요한 수준인데, 설마 제가 치이기까지 할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①운전자는 도주하지 않았고, ②주변에 목격자가 많았으며, ③사고지점 바로 옆에 경찰서도 있었던 데다가, ④자전거 운전자의 자동차보험이 자전거 사고도 보장해주었기에, 사고처리는 비교적 원활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치료가 끝나고, 보험사로부터 위자료 산정 서류를 받기 전까지는 말이죠.
발단
다시 주제로 돌아가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보험사에서 산정된 위자료가 법적으로 보장된 최저 위자료보다 50% 적은 수준이었고, 보험사와 3번의 통화 끝에 법적 보장 금액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위의 일본 국토교통성(한국의 국토교통부에 해당)에서 공개한 自賠責자배책(자동차손해배상책임보험)의 위자료 산정 기준에 따르면,
①총 치료기간 (사고 당일부터 치료 완료일까지)
②실 통원일수 (응급실, 정형외과, 접골원 등에 실제 방문한 일) x2
①과 ②를 비교하여 더 작은 숫자에 4,300엔을 곱하여 위자료를 산정합니다.
또죤의 경우는 아래와 같이 (이해를 돕기 위해 숫자를 각색함)
①총 치료기간 : 99(일) = 99
②실 통원일수 : 50(일) x2 = 100
이었기에, 숫자가 더 작은 ①총 치료기간 99에 4,300엔을 곱해 425,700엔이 지급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보험사로부터 받은 서류에 적힌 숫자는 215,000엔. 거의 50% 씩이나 적은 금액이었죠.
바로 확인 들어갔습니다.
첫 번째 전화 with 사고 담당자 A
교통사고 이후 사고처리를 하는 과정에서, 접수번호와 담당자를 배정받게 됩니다.
지금까지 잘 대응해주시고 궁금한 부분을 잘 설명해주셔서 이번에도 명확히 이유를 설명해주시겠거니 하면서 문의전화를 했습니다.
쿠션어를 잘 섞어가며, 산정된 위자료가 자배책 기준과 다른것에 대한 이유가 있는지를 문의했습니다.
돌아온 설명은
"네 고객님^^ 자배책 기준에서 설명하지 않고 있는게 있는데요^^, ②실 통원일수x2가 ①총 치료기간을 넘기게 되면, x2를 하지 않은 실 통원일수로만 계산합니다^^ 즉 또죤상의 경우엔 실제로 병원에 다니신 50일을 x2하면 100이 되는데, 이게 총 치료기간 99일을 넘겼기 때문에(?????), 50일에 4,300엔을 곱하게 되는 겁니다^^"
굉장히 자신감이 넘쳤지만 그런 설명이 적힌 약관을 제시하진 않았고, 담당자 본인이 신인시절 크게 혼나며 배웠던 내용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내용이고, 팀 내에서 매니저의 컨펌까지 받았기에 걱정하지 말라며, 뒷받침이 되지 않는 주장으로 안심을 시키더랍니다.
하지만 법률이란 것은 Seeing is Believing인 것....
산정방법에 대해 보험사의 공식적인 입장을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번째 전화 with 공식 민원창구 담당자 B
자배책 기준에서 적혀있지 않는 것으로 금액이 반씩이나 깎인다는 것을 납득할 수 없었고, 여러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일문철) 블로그에서도, ②실 통원일수x2가 ①총 치료기간을 넘으면 더 짧은 쪽인 ①총 치료기간에 맞춰서 산정하는 예시가 올라와 있었으며, 무엇보다
'내가 고작 하루이틀 더 치료를 받은 것 때문에 위자료가 20만엔이 날라간다고???'
라는 논리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차라리, 자동차가 아니라 자전거 사고였기에 위자료가 낮게 산정되었다는 변명이라면 납득했을 수도 있었을겁니다.)
보험사의 공식적인 입장을 듣기 위해, 사건 담당자가 아닌, 공식 민원창구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부탁드린 사항은 세가지였습니다.
- 산정된 위자료가 국토교통성 배상책임 기준과 다르게 책정된 근거를 제시해주실 것.
- 가급적 현 담당자가 아닌 다른 직원분이 중립적으로 확인하여 연락을 주실 것.
- 이와 관련된 커뮤니케이션을 이메일 등 이력이 남는 형식으로 해주실 것.
안타깝게도 아날로그 대국 일본답게(?) 3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전화가 가능한 시간대를 알려드린 다음, 다음날 전화를 받게 됩니다.
세 번째 전화 with 공식 민원창구 담당자 C
보험사로부터 전화가 오자마자 숨을 가다듬고, 전투태세를 갖추고, 녹음 버튼을 누르고, 받았습니다.
걱정과는 다르게 들려온 목소리는
"오래 기다리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손해보험 □□입니다, 지난번엔 위자료 산정이 오류가 있어 대단히 실례를 끼쳤습니다... 지금 전화 괜찮으실까요, 감사합니다, 걱정하셨던 부분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자면............ "
속사포처럼 사죄와 자기소개와 사죄와 사죄의 이유와 사죄와 감사와 사죄를 반복하는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에, 변호사까지 알아보고 법정 싸움도 불사할 생각으로 전화를 받은 저로서는 일단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결론은 (이해를 돕기 위해 숫자를 각색함) :
"사고 담당자 A가 안내해드린, 실 통원일수 50일을 기준으로 산정한 위자료는 잘못된 계산이었으며, 고객님이 문의해주셨던 대로 ①총 치료기간 99(일) 과 ②실 통원일수 50(일) x2 = 100 중 짧은 쪽인 ①에 맞춰서 산정하는 것이 정확한 계산입니다.
따라서, 이전에 안내해드린 215,000엔이 아닌 425,700엔으로 수정된 서류를 새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끼 얏 호 우
일단 해결이 된 것 같으니 저도 전투태세를 해제하고, 추가적인 컴플레인은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고 담당자도 아닌 별도의 직원분이, 제가 더 미안할 정도로 계속 죄송하다는 말씀을 반복하셔서 제가 달래드려야 할 정도였습니다 ㅎㅎ...
최종 서류 대응
전화가 끝나고 이틀 뒤, 속달우편으로 새로운 위자료 산정 서류가 왔습니다.
책임져야할 게 있으면 그 느리던 업무처리가 빛의 속도로 빨라지는 일본 사회생활...
잘못 계산된 첫번째 서류는, 산정이 끝났다는 연락을 받고 3주일을 기다렸었는데, 이번에 새로 계산해서 보내주신 서류는 전화가 끝나고 이틀 뒤, 시간상으론 48시간도 안되어 도착했습니다. (평일 저녁 5시 마지막 전화, 다다음날 오전 수령)
이 봉투 안엔 "손해배상에 관한 승낙서(면책증서)損害賠償に関する承諾書(免責証書)" 라는 서류가 들어있습니다.
이름과 계좌번호를 포함한 개인정보가 너무 많아서 실물을 보여드리진 못하지만, 쉽게 말하자면
"사고 가해자가 사고 피해자에게 아래 기재된 ○○엔의 치료비와 위자료를 지급하는 것으로, 사고 피해자는 이 사고에 대해 추가적인 소송을 제기하거나 비용청구를 하지 않는다"
는 내용에 대해 확인&서명&날인하는 서류입니다.
다행히도 제가 계산한 금액과 같은 액수로 재산정된 서류가 도착했고, 반송 후 일주일이 채 지나기도 전에 지정한 계좌로 위자료가 입금되었습니다!
이걸로 거의 반년에 다다르는 긴 교통사고 처리가 끝났습니다.
맺음말
해외에서 외국인으로서 경험하는 크고작은 사고가 많지만, 제대로 확인하지 않거나 사전정보가 부족하면 손해를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또 느끼게 되는 반년이었습니다.
결론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마지막 위자료 산정에 대한 후기를 먼저 작성했습니다만, 시리즈물로 추후
- 교통사고 직후 대처법
- 경찰 조서 작성
- 치료기간을 슬기롭게 보내는 법
등등을 작성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자전거 타시는 분들은 꼭 자전거 보험 가입하세요.
이번 사고가 과실비율 100:0의 피해자였기에 망정이지, 만약 제가 실수로 사람을 쳐서 다치게 한 상황에 보험까지 없었다면 수십만엔의 생돈을 지불해야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었습니다.
다행히 저는 자전거 구매시에 보험가입도 세트로 하면 저렴하게 할 수 있다고 해서 바로 가입했었는데, 이번 사건을 계기로 만료기간이 얼마 안 남은 걸 확인해서 바로 연장신청을 했습니다.
모두 안전한 하루 & 민첩한 하루 보내시기 바라며, 글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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